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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철학

자연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삶의 고통으로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각 대륙이 이동하면서 생긴다는 것을 알기에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후에 일어날 비슷한 일들에 대해 대비를 합니다. 반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이 내리는 벌’이라는 식의 비논리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따르기도 합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그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서 이해한다면 고통스럽다는 삶도 자유와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생활철학에서는 지혜의 눈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문제나 고통의 근원을 찾아가 봅니다.

돈의 노예로 사는 삶

우리는 흔히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노예라면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뜻하지만 사람들은 다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로 살고 있는 걸까요?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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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로부터의 자유

무소유라는 단어는 우리가 많이 듣고 단어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성인들은 무소유를 소유하지 않음으로 자유를 얻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써 거기에 매달리게 되고 그렇기에 구속된다는 것입니다.  무소유를 몸소 보여주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최소한만을 소유하고 욕심도 소유함도 없이 살아가면서 자유로운 삶을 몸소 보여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듣거나 책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정한 무소유일까요?  최소한으로 소유한다는 것도 결국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인데 최소한의 소유와 많은 소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진정한 무소유를 이룬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죽으면 됩니다.  죽으면 무엇을 소유하고 싶어도 소유할 없겠지요?  살아있을 손에 먹을 하나 들려있어도 소유이고 옷가지 하나 걸쳐있어도 소유가 되는 것인데 소유한 양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가진 것이 거의 없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소유는 소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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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를 할때의 마음

기부의 문화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습니다.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선단체나 기관에 기부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날 때마다 기부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매 월 또는 매 년 기부를 합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많은 어려운 생활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낳은 생활을 하길 바라면서 기부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부를 함으로써 스스로가 한 좋은 일에 마음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예수님께서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먼저 부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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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바로보기

우리는 뉴스에서 자연재해를 종종 접합니다.  최근의 가장 자연재해는 일본의 지진일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글을 쓰는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연재해가 아닌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생을 마치지만 특히나 이러한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사를 달리하는 경우 함께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종말론입니다.  종말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있는 방법을 알리고 말을 듣는 사람들은 믿음 의심 반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물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종말론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논리에 맞지도 않는 이야기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 듭니다.  무엇이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까요?  죽음이 두려운 것일까요 아니면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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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두려운 이유 (죄의 근원)

세상에는 지옥을 두려워하는 사람, 지옥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 또 지옥이나 천국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등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이 지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개인의 문제임에도 가끔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전도의 목적으로 이용합니다.  이 사람들은 천국의 아름다움이나 행복을 말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켜 전도를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 단체에 발을 디딥니다.  종교 생활을 통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결코 지옥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죽은 이후의 세계라 죽어서 지옥에 갔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서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옥이란 죽은 이후에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므로 현실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 는 있지만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렇기에 몇몇 종교 지도자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 등을 '신이 내리는 벌'이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일으키려 합니다.  가장 좋은 예로 얼마 전 일본의 지진을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 내리는 벌'이라고 이야기 한 몇몇 종교 지도자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은 이치에 맞지도 않는 이런 말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일으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마치 옛날 모든 일식이나 가뭄과 같은 자연 현상이 신의 의지였다고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낸 것과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정말로 그렇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던가 아니면 신도를 더 많이 모으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첫째의 경우라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야겠지만 둘째의 경우에는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이 착각에서 깨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가지는 지옥이나 신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과연 지옥이나 신이 내리는 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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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도 방법을 통해 보는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