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짧은 이야기 시리즈는 Facebook에서 시작한 짧은 글들입니다. 주제를 이어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보다는 그때그때 뉴스에 나오는 사회 문제나 개인적으로 듣는 이야기를 위주로 바꾸어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으신 분들은 게시판에 남기거나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짧은 글로 가능하면 짧은 이야기 시리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길어지는 경우에는 비디오로 만들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018-06-09

‘생각을 바꾸면 행복할 수 있다!’, 이 말 과연 사실일까요?

한 여성이 성추행을 당해 괴로워한다면, 그 괴로움은 어디서 올까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신체를 더듬은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괴로움이 올까요? 아마도 자신의 신체를 만드는 행동이 괴로움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즉,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자체가 상대방의 행동을 성적으로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을 싫어하는 내 생각을 바꿔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한다/사랑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상대의 손길이 바로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받아들여져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 때리면 ‘남편이 나를 미워해서 때린다!’라고 생각하면 그 삶이 고통일 것이니 남편이 때리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때리고 싶다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데 좀 맞아 주지 뭐’라고 생각하면 맞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고기 회식자리에서 ‘난 고기 싫어서 안 먹어’라고 고집을 피우지 않고 ‘고기가 맛있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만지는 사람들,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포함 세상의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성폭행을 당해도,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맞고 살아도, 개똥을 먹어도 행복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삶을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러한 삶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폭행을 하면 스스로 사랑한다고 받아들이며 달려들고 때려도 맞으면서 사랑한다고 할터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이러한 접근법을 환영하지 않을까요?

말을 할 때 단어의 선택 - 실수

말을 할 때 단어의 선택 - 실수

실수,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이 단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로서 한 부하직원이 무엇인가 일을 했는데 결과가 생각하고 다르게 나타났다고 했을 때, 만일 상사가 ‘너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물으면 ‘실수했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직장상사의 반응은 어떤가요? 모든 직장상사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칠칠치 못하게’, ‘잘 좀 하지’, ‘바보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난 또는 구박은 누가 자처한 것일까요? ‘실수’라는 단어를 사용한 당사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 상사는 그것을 빌미로 부하직원을 당당하게 구박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의 단어들은 성추행을 한 사람들이 ‘격려’라는 단어로 피해가려하듯,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상황을 피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을 당당하게 비난할 수도 있는 힘을 주는 반면,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자책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벌을 자초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나는 무엇을 어떻게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는데 결과는 내 생각과 다르게 나타났다’는 식으로 내 의도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결과가 생각과 다르게 나왔다는 것을 보이면, 직장상사와 같은 사람은 구박을 하기 보다는 아마도 자신이 보는 관점에서 빠진 부분들을 가르쳐주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직장생활도 내 삶도 좀 더 편하고 즐겁지 않을까요?

정크의 근거 없는 이론 - 암

정크의 근거 없는 이론 - 암

시간이 지날수록 암환자들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공기 중의 특정 화학물질에 의해, 토양에 섞여있는 화학물질 또는 방사선 물질 등,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는 감지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에서 오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상과 암에 대한 저의 근거 없는 이론을 하나 적습니다.

생물학 책에 암세포가 자라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 세포는 자라다가 세포와 세포가 서로 맞닿았을 때 멈추게 됩니다. 상처를 입은 부분에 새로 살이 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서로 맞닿았음에도 계속 자랍니다. 상처가 아물었음에도 계속 자라는 것과 같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암을 예방하는 방법 (여기서는 위나 장에 발생하는 암)이 있을까?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위와 장은 음식물로부터 최대한 많은 영양소를 끌어내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음식물과 접촉을 합니다. 그런데 설탕과 같이 이미 분해가 되어 즉석으로 몸에서 사용이 가능한 음식물이 들어오면 아마도 위나 장은 상대적으로 적게 움직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아가 이 장기들의 움직임이 적다면 결국 세포와 음식물 또는 세포와 세포간의 접촉이 줄게 되어 세포들이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 같고 이것이 암으로 발전하는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먹는 음식물을 위와 장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저는 장이나 위를 마사지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법을 생각해보니 제가 몇 번 글로도 쓰고 최근 ‘공부 방법을 익히는 공부 방법’ 강의 시리즈 1편에서 예로 든 숨쉬기가 떠올랐습니다.

간단히 적으면, 단전호흡을 뒤집어서 하는 방법으로 숨을 내 쉴 때 아랫배 (단전)부터 모든 배가 등가죽에 붙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강하게 밀어 넣는 것입니다. 물론 등은 곧게 펴고 항문과 요도의 근육도 최대한 조임으로서 장기들이 서로 부딪히도록 마사지를 하는 방법입니다.

단, 암을 예방하는 효과나 근거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 합니다.

2017-09-15

정크 생각: 정크가 본 북한이 군사력을 늘리는데 매달리는 이유

쉬지 않고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 참 많은 나라들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왜 군사력을 늘리는데 그렇게도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요? 실제 전쟁을 일으킨다면 결국 양쪽 모두 막대한 피해만을 입을 뿐일 텐데 과연 전쟁만이 이들의 목적일까요? 정크는 북한이 군사력을 늘리는데 매달리는 이유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봅니다.

우선 북한이 아닌 미국이나 한국을 살펴볼까요?

미국이나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면서 가장 핵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크는 경제라고 봅니다. 경제성장, GDP 등과 같이 모든 것이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이나 한국으로부터 경제를 제외한 다른 존재의 이유를 찾으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경제를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미국이나 한국과 같이 경제력에 초점을 맞춘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제성장을 위해 대부분의 활동을 합니다. 과거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이 군사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화 시켜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자원 등을 가져갔듯, 이들은 경제력을 늘리는 한 방편으로 군사력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북한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겉으로나마 사회주의를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북한은 결코 돈의 있고 없음, 그리고 금전에 따른 차별적 대우 등이 바탕에 깔린 경제성장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수확한 것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그들의 기본 바탕에서 생각해본다면 사실 지도층이라는 계층이 존재하면서 더 많이 가져가는 현실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을 정당화 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이외의 다른 형태라야 가능할 것이며 정크의 관점에서 북한은 군사력을 그 방편으로 삼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국가를 넘어설 수 있도록 군사력을 늘려감으로서 그 힘을 바탕으로 북한 주민들을 결집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경제든 군사력이든 늘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 공룡들이 화산활동과 지구와 충돌한 소행성 등으로 인해 대기는 먼지로 뒤덮이고 그로인해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많은 양의 광합성을 필요로 하는 덩치 큰 식물들이 먼저 죽어나갔을 것이며 이로 인해 몸집이 커 많이 먹어야하는 공룡들부터 차례로 죽어나갔을 것이라는 공룡멸종에 대한 정크의 이론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자꾸 늘리는 쪽으로만 향하는 현 국가들의 모습은 공룡과 같아 천연자원과 같이 경제력과 군사력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 점차 고갈되면 가장 덩치가 큰 나라들부터 먼저 쓰러져 갈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수의 이 말을 현 시대에 적용해서 칼을 경제와 군사력으로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2017-08-18

정크 생각: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을 보고

지난 주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안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크가 영화나 글로 접한 예수의 삶은 소위 서민들이 입는 옷에 돈, 명예, 권력과 같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갈망한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성당의 내부 한 가운데에 자리한 예수의 모습은 영화나 글에서 접한 것처럼 그저 옷 한 조각 걸쳐 입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모습인 반면 그 주변은 눈이 부실 정도의 다양한 색과 금칠로 덮여있고 전체적으로 권력과 돈이 없으면 지을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예수의 고통을 기억하고자 (물론 정크는 이 또한 예수의 신체적 고통을 함께 하고자 하는 동물적 본능에서 오는 것이지 실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십자가를 걸거나 매달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경우라면 예수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알려진 예수의 삶과 다르게 주변에 금칠을 하거나 돈과 권력이 있어야 가능한 건물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성당의 내부는 정크에게 다른 형태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사냥을 마친 사람들이 힘없이 죽어있는 사냥의 결과물을 놓고 주변에 모여 풍성한 음식, 춤과 노래와 함께 자신들의 성공을 축하하는 모습으로요. 생전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얻으려 하지 않았다는 예수의 육신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 죽음을 맞이해 힘이 없이 처져 있는 반면 그 형상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 돈 등이 없으면 만들지 못할만한 건축물이나 그림, 조각 등이 그렇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돈과 권력은 예수도 죽여 넘어뜨릴 수 있으니 일반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예수의 가르침이었을까요? 정크는 예수를 잘 모릅니다. 석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예수나 석가가 돈, 명예, 권력을 바랐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주변을 소위 화려하다는 것들로 장식해 놓은 것일까요? 그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이 형상들을 걸어놓는 것은 아닐까요?

성당의 입구에는 기부를 해서 이 성당을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가 살아 있었다면 아름다운 성당을 짓자고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