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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시리즈는 Facebook에서 시작한 짧은 글들입니다. 주제를 이어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보다는 그때그때 뉴스에 나오는 사회 문제나 개인적으로 듣는 이야기를 위주로 바꾸어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으신 분들은 게시판에 남기거나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짧은 글로 가능하면 짧은 이야기 시리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길어지는 경우에는 비디오로 만들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믿음, 신념, 그리고 사고력

가끔 ‘믿는다’ 또는 ‘신념을 가지고’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믿거나 신념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이 믿는 사람들의 말을 철석같이 신뢰하게 되고 또 따르겠죠? 이렇게 누군가를 믿고 따르면 과연 두뇌는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기보다는 자신이 믿는 사람들이나 기록에 남겨진 대로 배워 익혀서 따를 것이니 사고력은 사라지고 말 그대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길들여진 동물과 다르지 않겠죠?

그리고 배운 대로 자신의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떠들 것이니 말 그대로 개가 짖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겠죠?

그리고 사이비 종교나 사기꾼 또는 다단계 같은 것에 쉽게 빠지고 또 빠진 후에도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물과 같은 삶을 살면서 개가 짖듯 생각 없이 떠드는 자신의 현 모습을 벗어나려면 사고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사고력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믿습니까?’라고 또 ‘믿어야 합니다!’라고 외칠 때 ‘무엇을 왜 믿어야 하나요?’라고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내 두뇌는 사고력을 발휘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2018-08-07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원하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삶은 고통의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은 그나마 눈에 보이니 사람에 따라서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죄의식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오래전 죄의식에 대해 간단하게 적었었는데, 이번에는 예와 함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적어볼까 합니다.

죄의식은 어디서 올까요? 1-2년 전 댓글놀이 하면서 있었던 두 가지 이야기를 먼저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 1) 누군가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밉다고 그래서 삶이 괴롭다고 글을 올린 적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 때는 고기도 먹었었지만 동물들이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글이 너무 절실해보여서 동필이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당신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니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미워지고 또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괴로워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습니다. 몇 번의 댓글이 이어지고 끝에 이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조금 더 생각을 해 보겠다’라는 댓글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예 2) 다음은 자신은 정신지체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동필이에게 ‘넌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라는 취지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몇 번의 댓글이 오갔음에도 동필이를 설득할 수 없자 ‘너, 자폐니? 아니면 틱장애를 가진 놈이니?’와 같은 댓글을 달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동필이가 적었습니다. ‘자폐나 틱장애라는 단어를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용도로 쓰는 사람이 과연 자폐와 같은 정신지체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여 자기 자신은 자폐나 정신지체가 아님을 확인함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뜻의 댓글을 달았더니 이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을 모두 지우더군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비난/비판하지만 사실 자신의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는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인식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만의 생각’이었음이 표면으로 드러나면 한 개인의 생각일 뿐으로 취급받을 수 있어 자신의 생각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생각이 그러하다고 동의를 구하고는 하죠.

그런데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죄의식을 쌓아가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생각으로 앞서가는 운전자가 느리다고 욕과 함께 손가락질을 했고 또 주변의 친구들이, 직장 동료들이, 가족들이 모두 그렇다고 내가 화를 내는 상황이 이해가 간다고 또 당연하다고까지 공감해 주니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느리게 운전을 하게 되었을 때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느리다고 욕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생각에 스스로 자책하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느껴져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심하면 죄책감으로 속도를 높여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겠죠.

그래서 동필이는 말합니다. 죄의식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1. 내 생각은 내 생각일 뿐임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하고, 2.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 내 생각이나 판단의 근거를 만들려 하지 말 것이며, 3. 내 생각 (옳다/그르다, 맞다/틀리다 등)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여 비난하지 말고 (칭찬도 포함하지만 그래도 덜하니 넘어감), 4.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고, 5.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르면 그 차이를 물어 이해하고, 6. 행동에 자신감을 가지며, 7. 이미 벌어진 지나간 것에는 집착하지 않으면 됩니다.

2018-06-09

‘생각을 바꾸면 행복할 수 있다!’, 이 말 과연 사실일까요?

한 여성이 성추행을 당해 괴로워한다면, 그 괴로움은 어디서 올까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신체를 더듬은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괴로움이 올까요? 아마도 자신의 신체를 만드는 행동이 괴로움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즉,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자체가 상대방의 행동을 성적으로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을 싫어하는 내 생각을 바꿔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한다/사랑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상대의 손길이 바로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받아들여져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 때리면 ‘남편이 나를 미워해서 때린다!’라고 생각하면 그 삶이 고통일 것이니 남편이 때리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때리고 싶다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데 좀 맞아 주지 뭐’라고 생각하면 맞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고기 회식자리에서 ‘난 고기 싫어서 안 먹어’라고 고집을 피우지 않고 ‘고기가 맛있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만지는 사람들,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포함 세상의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성폭행을 당해도,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맞고 살아도, 개똥을 먹어도 행복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삶을 과연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러한 삶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폭행을 하면 스스로 사랑한다고 받아들이며 달려들고 때려도 맞으면서 사랑한다고 할터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이러한 접근법을 환영하지 않을까요?

말을 할 때 단어의 선택 - 실수

말을 할 때 단어의 선택 - 실수

실수,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이 단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로서 한 부하직원이 무엇인가 일을 했는데 결과가 생각하고 다르게 나타났다고 했을 때, 만일 상사가 ‘너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물으면 ‘실수했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직장상사의 반응은 어떤가요? 모든 직장상사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칠칠치 못하게’, ‘잘 좀 하지’, ‘바보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난 또는 구박은 누가 자처한 것일까요? ‘실수’라는 단어를 사용한 당사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 상사는 그것을 빌미로 부하직원을 당당하게 구박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의 단어들은 성추행을 한 사람들이 ‘격려’라는 단어로 피해가려하듯,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상황을 피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을 당당하게 비난할 수도 있는 힘을 주는 반면,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자책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벌을 자초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나는 무엇을 어떻게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는데 결과는 내 생각과 다르게 나타났다’는 식으로 내 의도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결과가 생각과 다르게 나왔다는 것을 보이면, 직장상사와 같은 사람은 구박을 하기 보다는 아마도 자신이 보는 관점에서 빠진 부분들을 가르쳐주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직장생활도 내 삶도 좀 더 편하고 즐겁지 않을까요?

정크의 근거 없는 이론 - 암

정크의 근거 없는 이론 - 암

시간이 지날수록 암환자들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공기 중의 특정 화학물질에 의해, 토양에 섞여있는 화학물질 또는 방사선 물질 등,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는 감지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에서 오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상과 암에 대한 저의 근거 없는 이론을 하나 적습니다.

생물학 책에 암세포가 자라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 세포는 자라다가 세포와 세포가 서로 맞닿았을 때 멈추게 됩니다. 상처를 입은 부분에 새로 살이 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서로 맞닿았음에도 계속 자랍니다. 상처가 아물었음에도 계속 자라는 것과 같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암을 예방하는 방법 (여기서는 위나 장에 발생하는 암)이 있을까?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위와 장은 음식물로부터 최대한 많은 영양소를 끌어내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음식물과 접촉을 합니다. 그런데 설탕과 같이 이미 분해가 되어 즉석으로 몸에서 사용이 가능한 음식물이 들어오면 아마도 위나 장은 상대적으로 적게 움직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아가 이 장기들의 움직임이 적다면 결국 세포와 음식물 또는 세포와 세포간의 접촉이 줄게 되어 세포들이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 같고 이것이 암으로 발전하는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먹는 음식물을 위와 장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저는 장이나 위를 마사지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법을 생각해보니 제가 몇 번 글로도 쓰고 최근 ‘공부 방법을 익히는 공부 방법’ 강의 시리즈 1편에서 예로 든 숨쉬기가 떠올랐습니다.

간단히 적으면, 단전호흡을 뒤집어서 하는 방법으로 숨을 내 쉴 때 아랫배 (단전)부터 모든 배가 등가죽에 붙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강하게 밀어 넣는 것입니다. 물론 등은 곧게 펴고 항문과 요도의 근육도 최대한 조임으로서 장기들이 서로 부딪히도록 마사지를 하는 방법입니다.

단, 암을 예방하는 효과나 근거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 합니다.